▲ 2019년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후원행사에 참석했던 조화순 목사(사진 오른쪽 두 번째) ⓒ이정훈/에큐메니안
▲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조화순 목사
▲ 60, 70년대 노동현장의 한가운데에 있다가 산골로 떠나 자연이 주는 삶을 살고 있는 조화순 목사의 자연일기. 조화순 목사는 강원도 봉평 태기산 자락 한구석에 흙집을 짓고 십여 년을 살아왔다. 노동현장을 떠나며 목사라는 이름도 버리고, 지난날의 삶을 성찰하는 글,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해 싸웠던 날들에 대한 반성과 기도 등이 담겨 있다.
여성노동자의 대모 조화순 목사의 생애와 그의 족적은 한국 현대사와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성육신적 사건의 기록이자, 관념의 상아탑에 갇혀 있던 신학을 민중의 거친 삶의 현장으로 끌어내린 예언자적 선언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는 화려한 구호 아래 진행된 대한민국의 초고속 경제 성장은 철저하게 민중의 희생을 담보로 한 자본의 폭력적 질주였다. 국가 주도의 수출 지향적 공업화 정책은 수많은 농촌 인구를 도시의 공장 지대로 유입시켰고, 그 중에서도 특히 수많은 어린 여성 노동자들은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혹은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평화시장과 구로공단, 그리고 인천의 방직공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하루 14시간에서 16시간에 달하는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렸으며, 먼지가 자욱하고 환기조차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말하는 기계’이자 ‘소모품’으로 전락하였다. 노동법은 엄연히 존재하였으나 국가 권력에 의해 철저히 무력화되었고, 자본가들의 탐욕은 노동자들의 육체와 영혼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이와 같은 암흑의 시대에 교회의 안락한 강단과 종교적 기득권의 울타리를 과감히 박차고 나와 자욱한 먼지와 굉음이 가득한 인천의 공장 지대로 걸어 들어간 한 여성이 있었다. 그가 바로 한국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여성 감리교 목사 중 한 명이자, 평생을 소외된 여성 노동자들의 어머니이자 동지로 살다 간 조화순 목사이다.
조화순의 삶은 단순한 사회운동이나 인권 운동의 궤적을 넘어서는 독특한 신학적 무게를 지닌다. 그의 생애는 기독교의 복음이 어떻게 역사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육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렬한 증거이며, 성서의 활자가 지닌 해방적 능력이 자본주의의 구조적 죄악과 어떻게 정면으로 충돌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텍스트였다. 그는 제도화된 교회가 주입하던 기복적이고 내세 중심적인 신앙에 의문을 제기하며, 고통받는 민중의 얼굴 속에서 비로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발견하였다.
필자는 ‘여성노동자의 대모’로 불리는 조화순 목사의 생애와 족적을 신학적 시선으로 심층 조명함으로써, 그의 삶을 관통한 소명 의식의 신학적 기원과 도시산업선교회(UIM)를 통한 현장 신학의 실천, 그리고 민중신학과 여성주의 신학이 그의 삶 속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하였는지를 전면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어 예언자적 목소리를 잃어버린 한국 교회를 향해 역사가 던지는 준엄한 질문을 다시금 정립하고자 한다.
1. 성육신의 결단과 공장 현장으로의 침잠
조화순의 신학적 사유와 목회적 실천에서 가장 결정적인 대전환점은 1966년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인천산선)에 부임하면서 이루어졌다. 당시 한국 교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정통주의 및 보수주의 신학은 인간의 구원을 철저히 영혼의 문제로만 국한시켰으며, 개인의 도덕적 순결과 죽음 이후의 천국 보상, 그리고 이 땅에서의 물질적 축복을 구하는 기복신앙에 경도되어 있었다. 교회의 높은 담장 안에서는 연일 은혜와 평강이 선포되었으나, 조화순이 마주한 인천 만석동과 화수동 일대의 공장 지대는 그러한 관념적이고 초월적인 언어만으로는 도저히 구원할 수 없는, 구조적인 죄악과 인간 소외가 지옥도처럼 펼쳐진 공간이었다.
공장의 어린 여공들은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도 보장받지 못한 채, 몰려오는 잠을 쫓기 위해 각성제를 복용해가며 밤샘 노동을 버텨내고 있었고, 그로 인해 육체와 정신이 처참하게 파괴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조화순은 목회자로서 깊은 실존적 신학적 회의에 직면하게 되었다. 과연 이토록 처참하게 짓밟힌 이들에게 ‘예수 믿고 천국 가라’는 설교가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으며,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하나님은 과연 누구이신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그는 노동자를 단순히 영혼 구원의 전도 대상이나 동정의 객체로 바라보기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자본의 탐욕에 의해 일그러졌으나 여전히 하느님의 형상(Imago Dei)을 부여받은 고귀한 존재들이었다.
복음을 언어로 선포하기에 앞서, 그들의 눈물과 고통을 온몸으로 체휼하고 그들과 온전히 일치되어야 한다는 신앙적 결단에 따라 조화순은 1970년 동일방직에 한 명의 노동자로 위장 취업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성서와 신학 서적이 가득한 서재를 떠나, 시끄러운 기계 소음과 면분진이 가득한 방직공장의 생산라인으로 향한 이 공간적 이동은 한국 기독교 선교사에서 가장 중대한 신학적 사건 중 하나였다. 이는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 임하여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을 스스로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 즉 케노시스(Kenosis)적 성육신의 현대적 재현이었다. 조화순은 감리교 전도사라는 종교적 권위와 지식인으로서의 우월의식을 완전히 비워내고, 방직공장의 먼지 구덩이 속에서 실을 잣고 바닥을 쓸어내는 가장 낮은 자의 자리를 자처하였다. 그는 훗날 자신의 고백을 통해, 자신은 노동자들을 가르치거나 계몽하기 위해 공장에 간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이 왜 발생하는지, 왜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들의 눈과 몸을 통해 직접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보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철저한 현장성은 기존의 시혜적 자선이나 지식인 중심의 관념적 노동 운동을 본질적으로 넘어서는, 민중의 삶 속으로의 철저한 하강이자 침잠이었다. 그는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땀 흘리고, 함께 욕먹고, 함께 배고파하면서 비로소 텍스트로서의 복음이 어떻게 콘텍스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능력으로 변모하는지를 목도하게 되었다. 자본의 가혹한 압제 속에서 신음하는 동료 여공들의 육체적 고통은 곧 십자가 위에서 고난당하시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직결되는 것이었으며, 공장 바닥은 단순한 노동의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는 거룩한 제단으로 변화되었다. 이처럼 조화순의 성육신적 결단은 한국적 상황에서 현장 신학이 탄생하는 영양분이 되었으며, 교회가 세상의 변방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실천적 준거가 되었다.
2. 십자가에 못 박힌 민중의 발견과 동일방직의 저항
동일방직을 비롯한 인천 지역 공장들에서의 혹독한 노동 경험은 조화순에게 민중이라는 존재를 관념적 정의가 아닌 실존적 실체로 각인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한국의 노동자들은 자본가와 국가 권력의 이중적 감시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마저 봉쇄당하고 있었다. 특히 1978년 발생한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은 자본과 권력이 결탁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어디까지 모독하고 유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참혹한 비극이자, 동시에 한국 노동운동사와 신학사에 영원히 마멸되지 않을 성금요일의 십자가 사건이었다.
당시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중심의 어용 노조를 혁파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민주노조를 결성하여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 회사의 사주를 받은 구사대와 이를 묵인하고 방조한 국가 경찰 세력은 민주노조 총회를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던 여성 노동자들을 향해 참혹하게도 인간의 배설물을 퍼붓는 만행을 저질렀다. 얼굴과 온몸에 인분을 뒤집어쓰고, 입안으로 오물이 들어오는 극한의 모욕 속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은 울부짖으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찬송가를 부르며 민주노조 사수를 외쳤다.
이 아비규환의 현장, 인간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폭력의 한복판에서 조화순은 마침내 성서가 예언한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예수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화려한 예배당의 십자가에 매달린 박제된 예수가 아니라, 자본과 권력의 오물을 온몸으로 뒤집어쓴 채 신음하고 투쟁하는 ‘십자가에 못 박힌 민중’ 그 자체였다. 이 참혹하고도 거룩한 성금요일의 현장에서 조화순이 선포한 복음은 저세상의 내세적 위로나 체념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는 고통당하는 노동자들에게 이 억압을 하느님이 주신 팔자나 숙명으로 여기며 굴종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도리어 복음은 사탄의 세력과 다름없는 압제자들의 사슬을 끊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하느님의 정의로운 해방의 소식, 즉 희년의 선포(누가복음 4장 18-19절)임을 온몸으로 증거하였다.
조화순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자본의 노예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 동등하고 존엄한 인간 주체임을 끊임없이 자각 시켰다. 이에 따라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단순히 종교적 위안을 얻는 소그룹 모임의 장소를 넘어,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인간됨을 선언하고, 노동법을 공부하며, 자신들을 얽매고 있는 사회적 모순을 자각하는 해방의 요람이자 성전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국가 정보기관과 사측은 조화순을 ‘교회를 혼란케 하는 빨갱이 배후 조종자’로 낙인찍고 끊임없이 미행하고 체포하였으며 투옥과 고문을 일삼았다. 그러나 조화순은 권력의 가혹한 탄압 앞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차디찬 감옥을 또 다른 목회의 현장이자 하느님의 공의를 선포하는 예언자적 강단으로 삼았다.
그는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들을 향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자들에게 임할 하느님의 심판을 준엄하게 경고하였으며, 고난받는 민중과 함께하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일한 좁은 길임을 자신의 온 삶을 통해 증명해 보였다. 동일방직의 저항은 단순히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어난 노동쟁의를 넘어, 한국 기독교가 민중의 고난에 어떻게 동참해야 하는지, 그리고 민중 스스로가 어떻게 구원의 주체이자 역사의 주역으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3. 민중신학의 여성주의적 확장과 구조적 악의 혁파
조화순 목사의 생애가 한국 기독교 역사와 세계 신학계에 남긴 가장 독창적이고도 혁명적인 기여는,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의 암울한 군부 독재 상황 속에서 자생적으로 발흥한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확장하고 완성했다는 점에 있다. 서남동, 안병무, 현영학, 서광선 등 당대의 저명한 남성 신학자들에 의해 수립된 초기 민중신학은 국가 권력의 정당성 결여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세계 신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그 논의의 중심은 다분히 거시적인 계급 담론이나 민족 해방, 그리고 남성 중심적인 역사 서사에 치우쳐 있다는 내재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조화순이 기도의 골방에서 하느님께 울부짖고, 굉음이 울리는 공장 현장에서 함께 땀 흘리며 만난 진짜 민중은 추상적인 이론 속의 계급이 아니라, 이중 삼중의 중첩된 차별과 억압의 사슬에 묶여 신음하던 구체적인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자본가에 의해 가혹하게 경제적 이윤을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 계급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인 유교적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문화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고, 공장 내에서는 남성 관리자들로부터 상습적인 언어폭력과 성추행, 인격 모독을 당하는 중첩된 소외의 피해자들이었다.
심지어 같은 노동자 계급 내의 남성 노동자들로부터도 철저히 배제되고 도구화되는 ‘소외 속의 소외’, 즉 가장 밑바닥의 소외를 경험하는 존재들이었다. 또한 조화순은 공장의 담장을 넘어, 당시 주한미군 기지 주변에서 이른바 ‘기지촌 여성’ 혹은 ‘양공주’라는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국가의 묵인과 조장 하에 달러 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던 위안부 여성들의 참혹한 삶에도 깊은 신학적 관심을 기울였다.
이처럼 사회적 폭력과 가식적인 도덕주의의 가장 어두운 변방에 위치한 여성들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조화순은 죄(Sin)의 본질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적 이해를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죄란 단순히 개인이 마음속으로 짓는 도덕적 결함이나 경건치 못한 종교적 행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철저히 도구화하고, 상품화하며,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사회적 구조적 악(Structural Evil)과 체제 그 자체임을 날카롭게 파헤친 것이다. 그리하여 조화순의 해방 신학은 세련된 학문적 언어와 수사가 가득한 상아탑의 논쟁에 머물지 않고, 오물에 더럽혀지고 매 맞고 굶주리는 구체적인 ‘몸의 해방’과 ‘인간 존엄의 회복’에서 출발하는 현장의 신학이 되었다.
그는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역사 서사에서 철저히 은폐되고 배제되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과 한(恨)을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해석하는 제1의 신학적 텍스트로 격상시켰다. 나아가 전통적인 기독교 교회가 주입해 온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이며 가부장적인 신관, 즉 저 높은 하늘에서 인간을 굽어보고 심판하는 왕으로서의 ‘하나님 아버지’의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하였다. 대신 고통당하는 자들의 신음 소리에 함께 가슴을 찢으며 아파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품어 안아 자신의 젖을 먹여 키우시는 모성적이며 생명 치유적인 하느님, 민중의 고난 한복판에서 함께 눈물 흘리시는 동반자로서의 하느님을 고백하고 선포하였다.
그는 힘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권력의 피라미드를 거부하고, 가장 약한 자들이 서로의 상처를 싸매어 주는 참된 친교와 연대(Koinonia)를 통해 아래에서부터 세상을 뒤흔드는 전복적인 하느님 나라 공동체를 형성해 나갔다. 조화순 목사에게 있어서 여성해방은 복음의 곁가지나 부차적인 장식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할 때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핵심적인 구원 사건이었다. 자본과 가부장제의 이중 사슬에 묶여 있던 여성 노동자가 그 사슬을 끊고 주체적인 인간이자 그리스도의 온전한 지체로 바로 설 때, 비로소 사회의 참된 해방과 변혁도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이론이 아닌 자신의 생애 전체를 던져 현장에서 입증해 내었다. 그의 이러한 통찰은 한국 민중신학이 계급의 사각지대를 극복하고 여성주의적 보편성을 획득하게 한 위대한 신학적 도약이었다.
4. 한국 교회의 위기와 조화순의 예언자적 영성
조화순 목사가 한 세기 동안 온몸을 던져 걸어온 예언자적 족적과 실천적 신학은, 화려한 외형적 성장의 이면에 깊은 영적 도덕적 파산을 겪고 있는 21세기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거대하고도 뼈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늘날 거대하게 비대해진 한국 교회의 자화상은 어떠한가.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웅장한 예배당, 자본주의의 세련된 마케팅 기법과 경영 원리를 그대로 도입한 교회 운영, 성공과 번영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둔갑시키는 기복주의적 설교, 그리고 사회적 기득권 및 정치 권력과 결탁하여 소외된 자들의 고통과 눈물에는 철저히 귀를 막고 침묵하는 모습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서글픈 초상이다. 복음의 십자가는 황금으로 도금되었고, 예수의 낮아짐과 비움의 영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처럼 성공주의와 번영신학의 깊은 늪에 빠져 신음하는 오늘날의 종교적 지형 속에서, 조화순 목사가 남긴 신학적 유산은 복음의 본질이 다름 아닌 ‘떠남’과 ‘연대’에 있음을 준엄하게 웅변한다. 그는 목사라는 성직이 주는 안락함과 종교적 권위를 과감히 배설물처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걸어가셨던 세상의 가장 어두운 변방, 소외와 차별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갔다.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신 예수의 발자취(히브리서 13장 12-13절)를 그대로 추종하여, 교회라는 안전하고 거룩해 보이는 울타리를 넘어서 노동 현장이라는 거친 광야, 즉 삶의 처절한 콘텍스트로 나아간 것이다.
1970년대의 거친 방직공장의 형태는 현대에 이르러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 감정 노동, 그리고 이주 노동자들의 절망 등 더욱 고도화되고 파편화된 형태로 다변화되었다. 그러나 자본과 권력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의 노동을 부속품화하며, 경제적 이윤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쓰레기처럼 버리는 본질적인 죄악의 구조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 사회의 차별과 배제는 더욱 정교해지고 교묘한 법적 제도적 장치 뒤로 숨어들었으며, 노동자들의 고립과 파편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절망과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에, 조화순 목사의 생애는 교회가 마땅히 어느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 누구의 눈물을 닦아주는 하느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비추는 영적 나침반이 된다. 그가 이 땅에 남긴 신학적 유산은 과거의 역사책 속에 갇혀 있는 박제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사각지대에서, 부당한 해고와 차별의 현장에서 신음하는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향해 외면하지 말고 응답하라는 성령의 강력하고도 준엄한 초대이다. 교회가 세상의 기득권 편에 서서 자신들의 안위만을 구할 때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니며, 가장 낮고 소외된 자들과 연대할 때 비로소 그곳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이 조화순 목사가 평생을 통해 보여준 현장 신학의 정수이다.
기독교의 복음을 관념적 교리나 교파의 도그마가 아닌 생생한 삶의 언어로 번역해 냈던 참된 목자, 낮은 자들의 영원한 동지이자 여성 노동자들의 어머니 조화순. 거룩한 교회의 문을 열고 세상의 죄악과 고통 한복판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던 그의 예언자적 발걸음과 뜨거웠던 신학적 성육신의 영성은, 오늘날 자본의 지배 아래서 정의와 평화, 그리고 생명이 가득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일구어 가고자 몸부림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신학자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성의 샘터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며, 어두운 시대를 변혁하는 거룩한 등불로 영원히 타오를 것이다.
평생을 역사의 격류 속에서 자본의 폭력과 가부장제에 맞서 투쟁해 온 조화순 목사는, 오늘날 92세의 고령이 되어 강화도의 모 요양병원에서 고요히 요양 중에 있다. 격정적이었던 노동 현장과 감옥을 떠나 깊은 침묵 속에 머무는 그의 노년은, 외형적 성장과 자본주의적 번영에 매몰되어 소외된 자들의 눈물을 외면하는 오늘날의 한국 교회를 향해 거대한 소리 없는 외침을 던진다. 그가 보여준 철저한 비움(Kenosis)과 내려놓음의 영성은 병상의 실존을 통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 등 고도화된 소외 속에 신음하는 현대의 민중을 향해, 그의 침묵은 교회가 서 있어야 할 진정한 자리가 어디인지를 날카롭게 되묻는다. 그가 뿌린 눈물과 땀방울은 민중신학과 여성해방 신학이 하나로 수렴된 거룩한 밀알이 되었다.
출처 : 에큐메니안(https://www.ecumenian.com)
여성노동자의 대모 조화순 목사의 생애와 그의 족적: 민중신학과 여성해방의 현장적 수렴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에큐메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