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노동자 가족임을 자랑스러워하던 그녀를 생각하며…
[쌍용차, ‘죽음의 행진’을 멈춰라·<1>] “‘사회적 타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2012.06.28 07:46:00
지난 4월 13일 쌍용자동차에서 22번째 자살자가 발생하자, 이에 충격을 받은 노동계 및 시민 사회단체 대표와 사회원로들이 쌍용차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모임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타살 규탄과 쌍용자동차 노동자 전원복직을 촉구하는 노동 시민 사회단체 대표와 사회원로들의 기자회견”이라는 긴 명칭이 사용되었다. 나는 여기에서 ‘사회적 타살’이란 단어가 사용된 것에 주목하고 싶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자본의 야만적인 횡포에 경제적인 약자들이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시기에, 1812년 로폴드의 카트라이트 공장의 습격에서 체포된 100명의 노동자 중 14명이 처형되고, 7명이 추방되는 사건이 있었다. 1830년대에 이르기까지 러다이트 운동으로 알려진 기계 파괴운동 참여자에 대한 영국 정부의 대응은 비인간적이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참상은 이제 영국인에게 과거의 야만적인 에피소드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22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의 목숨을 앗아간 쌍용차 사태는 그런 야만적인 노동탄압이 버젓이 21세기에, 그것도 OECD와 DAC의 소속국가임을 뽐내는 대한민국의 땅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아이러니로 가득 찬 ‘역사의 비동시성’이다. 강원도에서 생태적 삶을 누리며 평화롭게 사는, 1970년대 노동운동의 거목이라 할 수 있는 조화순 목사님은 노구를 이끌고 앞의 기자회견에 참석하였다. “이게 도대체 1960년대, 아니면 1970년대 이야기냐”며, 그녀는 발언 도중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냉정한 현실이다.
굳이 앞의 기자회견에서 사용된 ‘사회적 타살’이라는 용어를 내가 들추어내는 이유는 이제는 우리 모두에게 쌍용차 사태의 책임을 냉혹하게 묻기 위함이다. 도대체 누가 책임주체인가? 나는 먼저 정부, 특히 고용노동부의 책임을 묻고 싶다. 2009년 8월 6일 77일 간의 옥쇄투쟁은 “정리해고자 48% 무급휴직, 52%는 희망퇴직 및 분사, 무급휴직자에 대한 1년 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합의와 더불어 종결되었다. 그러나 사측은 2009년 정리해고 이후 경영실적이 개선되면서, 올해만도 약 3조원의 매출 목표를 달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단 한 명의 무급 휴직자도 복귀시키지 않았고, 경영이 어렵다는 변명만 되풀이하면서, 실제로는 신규채용을 시도하였다. 정부와 정치권도 해고노동자의 복직이나 재고용을 추진해야 하는 중재자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정부의 역할과 관련하여 정부나 보수언론은 앵무새처럼 쌍용차사태는 노동과 자본의 문제이며, 여기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되풀이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석유경제 주식의 90%를 차지하던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가 정부에 의해 1911년 20개의 회사로 분할된 사례나 혹은 2차대전 후 프랑스의 쿠르쏘(Creusot)독점재벌이 국유화된 사례를 기억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중심부 국가에서 진행된 이런 현상들은 서양사 개설서만 들추어도 찾아낼 수 있는 사건들이다. 혹자는 이런 사례는 세계화가 진행되지 않은 1세기전의 사건이라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역사가들은 우리의 역사적 편견을 걷어내고 보면, 1세기 전도 지금 못지않게 세계화된 시대였다는 실증적인 연구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가 독점기업이나 재벌의 해체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례들을 통해서 국민적 합의가 있다면, 국가는 자본에 대해 감독을 강화할 수 있음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사가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150억원을 제기하고, 국가가 20억원을 제기한 것도 경제적 약자를 향해 자본과 국가가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찰이 제기한 후자의 손해배상을 통해서 회사에서도 쫓겨난 67명의 임금 및 퇴직금 그리고 22명의 부동산이 가압류 상태에 들어간 것은 쫓겨난 쌍용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절망감을 더 가속화시키는 일이었다.
우리는 우선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책임방기를 엄중하게 문책하고 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이미 2026명의 희망퇴직자, 159명의 정리해고자, 457명의 무급휴직자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사측이 사회적 합의이자 노사(정) 대타협인 ‘8. 6 합의사항’을 전혀 이행하고 있지 않은데 대해서 책임을 묻고, 그 이행을 현실화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부의 정치력이 아니겠는가? 우선 무급휴직자에 대해서 복직시키거나 유급휴직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회사 정상화 과정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희망퇴직자들의 복직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우선 2009년 8월 6일 이후 쌍용차 노사합의 이행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감독현황이나 해고노동자 재취업 및 고용안정대책 추진현황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그 보고서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정리해고 규모를 줄이기 위한 고용유지지원금 등 고용노동부의 고용복지재정 지원 대책이나 노사 간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고용노동부의 감독현황에 대한 실태조사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실태조사를 통해서 국민 앞에서 고용노동부의 책임 방기를 엄중하게 문책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정부의 정리해고나 노사문제에 대한 불감증과 무능성도 지적해야 하고,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바로 이런 이슈가 새 대통령 선출의 중요한 잣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쌍용자동자 문제와 관련하여 국회도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설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국회 역시도 22명의 희생자가 나올 때까지 쌍용자동차문제를 방치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늦었지만 쌍용자동차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이 결성된 것은 여러모로 다행스런 일이다. 국회 차원에서 먼저 쌍용자동차문제에 대한 청문회를 실시하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정리해고 요건강화를 위한 입법안을 통과시키는 것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사측의 경영상의 필요를 넘어 정리해고를 사회적으로 통제, 관리해야할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제기하고, 그 합의를 유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본의 사회적 책임도 제기해야 한다. 이미 2월에 시민사회단체가, 4월에는 네델란드 투자회사인 APG가 인도의 마힌드라 본사에 서한을 전달하였고, 또한 홈페이지나 트위터를 통한 네티즌들의 압박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해외자본을 향한 싸움이 용이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관건은 이런 항의운동이 얼마나 국민적인 참여와 지지를 받는냐 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ILO와 같은 국제노동기구의 개입을 통한 압력행사도 시도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2명이 자살한 쌍용자동차 문제와 관련하여 이제 우리는 시민사회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22명의 자살의 배후에 놓인 절망감 속에는 우리 모두의 사회적 망각도 크게 작용할 것이다. 이들의 절망적인 현실에 대해서 정치권이나 자본에 못지 않게 시민 자신들도 감수성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자책이 필요하다. 여기서 감수성이란 책임이라는 용어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정리해고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언제라도 나 자신, 내 아내, 내 자식, 내 형제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에 공동체적인 연대의 관점에서 뿐 아니라, 사실은 이를 내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민사회는 먼저 쌍용노동자문제를 많이 알리고, 공유하고, 이를 사회적 담론으로 확산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고, 서로 적극적인 알리미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대선을 5개월 앞두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쌍용자동차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이에서 더 나아가 쌍용자동차문제의 노·사·정 간의 해결을 넘어선 보다 근원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정해신 박사가 문화공간 ‘와락’을 개소하고, 그 작업과 관련하여 증언한 대로 22명이 자살하는 참혹한 현실은 정리해고나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에 못지 않게 사회적 소외감이나 노ㆍ 노 간의 갈등도 크게 작용하였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때 마다 부딪히는 사회적 배제의 경험이나 이웃의 멸시, 나아가 동료였던 노동자에게서 느끼는 배신감 등이 마찬가지로 쌍용자동차 해고자나 휴직자의 절망감을 부추겼다. 우리는 그 사이 노동문제를 지나치게 임금, 노동시간, 고용문제에 집중하면서, 노동자 문화나 노동자 가족의 일상적 삶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역사적으로 노동운동의 좌절에는 노동자 내부의 분열이나 노동력의 분절화가 크게 작용하여 왔다. 이는 노동운동이 당면한 현실이지만, 그대로 방치할 문제는 아니다. 나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역사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노동자 문화를 창조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identity)를 찾아가려는 열정적인 노력을 기억하고 있다. 노동자문화운동을 통해서 그들은 자본의 문화정책이나 그 통제를 넘어서 대안문화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노동자는 사회민주당 노동자로서의 자긍심과 자기정체성을 확보해가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시민계층보다 자신들이 더 도덕적임을 입증하려 하였다. 이제 우리에게도 이런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의 노동현실이 늘 위기 대처 중심의 투쟁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은 알지만, 노동자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대안적인 노동자문화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나는 독일 유학생활 동안 나의 절친한 친구이자, 신문기자인 도리스의 어머니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30대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슈퍼의 계산대에서 일하며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낸 야르여사는 고작 초등학교 2년을 중퇴한 여성이다. 그녀는 작은 연금으로 생활하지만, 늘 자신이 사회민주당 3대째 노동자 가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녀는 생활비는 충분하지만, 오랫동안 흑백 텔레비전을 보고 살았다. 아래 층에 사는, 부모가 일하러 나간 터키 노동자의 아들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움직이지 못하는 이웃 노인 두 명을 위하여 장을 봐주고, 종종 평화시위에 피켓을 들고 나가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속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그녀는 1980년에 일시귀국을 한 내 손에 한국의 구속자에게 전해 주라고 200마르크를 쥐어주기도 하였다. 바로 이것이 우리 노동하는 사람의 미래상이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 안에서도 19세기 서구 노동운동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했던 공동체의 이상이 되살아나야 하지 않는가?
▲ ⓒ프레시안(김윤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