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21 19:15수정 : 2013.08.21 21:09

1978년 11월7일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조화순 목사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동일방직 사건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인권문제로 확대됐다. 사진은 79년 5월 조 목사의 석방을 촉구하는 아시아교회협의회의 신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70

1978년 11월6일 부산 와이엠시에이(YMCA) 강당에서 강연을 했던 조화순 목사가 이튿날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조 목사의 구속은 앞서 5월18일 부산에서 김영태 노총 위원장에 대한 낙선운동을 하다 구속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추송례·김옥섭·권분란·박양순·공인숙 등의 재판과 관련이 있었다. 10월19일 선고공판에서 검사의 구형이 1년 반에 그쳤기에 모두들 집행유예 정도로 풀려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8개월에서 1년까지 실형이 선고되었다. 애초 구류도 안 될 사안에 실형이 선고되자 분노한 방청객들의 고함 소리로 법정이 소란스러워졌고, 그 와중에 부산 도시산업선교회 총무 박상도가 구속되는 또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하여 11월6일 ‘박상도씨 석방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고 조 목사가 그의 구속 경위와 9월22일 기독교회관 연극 사건을 설명하게 되었던 것이었다.조 목사의 죄목은 ‘국가안전과 공공질서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었다. 결국 항소심에서 3년의 형이 확정돼 수감된 그는 79년 ‘10·26’으로 박정희가 암살된 뒤 ‘긴조 9호’가 해제되면서 12월29일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추송례 등 5명의 구속 노동자들은 앞서 79년 2월5일 항소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한편 이총각을 비롯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들은 기독교회관 공연에서 경찰의 폭력적 해산으로 끝까지 보여주진 못했지만, 연극이 성명서나 호소문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홍보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쉬워하던 차에 또 한번 공연을 할 기회가 왔다. 78년 11월26일 전남 광주 계림성당에서 가톨릭농민회 주최로 열린 ‘전국 쌀생산자대회 및 추수감사제’에서 ‘우리는 이렇게 당했고 이렇게 싸웠다’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그날 “살인농정 철폐하라”, “쌀생산비 보상하라” 등의 펼침막을 들고 참석한 1500여명의 농민들은 자식이나 다름없는 동일방직 해고자들의 공연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이어 12월 중순에는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서 기각되어 중앙노동위(중노위)에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재심’에 관한 진술을 위해, 출석요구서가 발부된 이총각을 비롯한 해고자들 몇몇이 위원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회사로부터 받은 차별대우를 가감 없이 진술했다. 지노위에서는 “호봉 조정에 차별을 둔 것은 노조활동 때문이 아니라 기능도에 의한 것”이라는 회사 쪽의 주장을 받아들여 판정을 내렸고 이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한 자리였다. 그날도 회사 쪽에서는 양재호가 출석해 “노조활동 방해는 근거 없는 얘기”라고 강변했다.78년은 동일방직 노동자들에겐 너무도 힘든 한 해였다. 1월23일 섬유산업노조본부(섬유본조)의 산하 지부에 대한 통제권을 크게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규약을 개정해 동일방직에 철퇴를 가하더니, 79년을 이틀 앞둔 12월30일, 중노위는 이총각 외 78명이 신청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대해 각하 판정을 내렸다. 그렇다고 무릎을 꿇을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회사와 중노위를 상대로 서울고법에 부당노동행위 및 부당해고에 관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총각은 지나온 1년이 마치 10년의 세월을 겪은 듯 한없이 더디고 무거웠다. 아마도 노동운동가로서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가 받아야 할 고통과 아픔은 끝없이 계속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고통의 끝에는 그보다 더 큰 희망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 또한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미국의 노동운동가 오거스트 스피스가 사형선고를 받고 했던 최후진술을 늘 기억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다면 말이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뒤에서, 사방팔방에서 불꽃은 꺼질 줄 모르고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는 없으리라!”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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