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세종대왕 동상에 올랐나
  
그들은 왜 세종대왕 동상에 올랐나 기사의 사진
이종건 감신대 도빈 회장

“신학생은 기도만?… 행동 안하면 잘못입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후 대다수가 침묵으로 ‘거대한 분노’를 삭이고 있을 때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위에 올라가 “이것이 국가인가”라고 외친 청년들이 있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도시빈민선교회(도빈)와 사람됨의신학연구회 소속 대학생 8명은 지난 8일 오후 “유가족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라”며 기습 시위를 벌였다.

6분30초 만에 경찰에 연행됐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시위 장면이 퍼졌다. 어떤 이는 ‘청춘의 표상은 시위’라며 응원했고 또 다른 이는 ‘신학생이라면 기도나 하라’고 비난했다. 집요하게 배후를 캐묻는 경찰에게 청년들은 “우리의 배후는 ‘정의를 강물같이 흐르게 하라’(암 5:24)는 성경 말씀”이라고 했다. 동상 위에서 성명을 낭독했던 감신대 도빈 회장 이종건(21)씨를 지난 20일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만났다.

무릎 꿇는 일은 일어서기 전에 하는 것이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이씨는 앳돼 보였다. 이씨는 전날부터 유가족들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라며 청계광장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간 상태다.

-신학생은 시위를 할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크리스천도 있어요.

“기도는 행동하기 전에 홀로 하는 것 아닌가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조용히 홀로 기도하셨어요. ‘노동운동의 대모’ 조화순 목사는 발로 하는 신학이란 말씀을 했어요.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일은 발로 일어서서 움직이기 전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크리스천들이 기도를 무기로 여기는 것 같아요. 기도를 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면죄부로 삼는 것은 잘못입니다.”

-일부 교회 안에는 사회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는 빈곤 사역을 많이 해요. 노숙인들에게 밥도 열심히 해주죠.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노숙인이 왜 줄지 않는지, 왜 한번 빈곤층으로 떨어진 사람은 다시 올라가기 어려운지 사회 구조에 대해 얘기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예수님은 떡만 나눠주시지 않았어요. 하나님 나라를 만들라(마 6:10)고 말씀하셨지요.”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온 데 많은 사람이 놀란 것 같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사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어떤 구호를 쓸 수 있을까요. ‘정권 퇴진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의 말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무슨 말이나 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게 민주주의예요.”

-불법 시위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걱정되진 않나요.

“동상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오를 때 떨어질까봐 무서웠습니다. 일단 올라가니 다른 생각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 국민들의 분노를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로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저희가 ‘벌금 폭탄’을 받을 수도 있겠죠. 그땐 정식 재판을 청구할 생각이에요. 어떤 구호든 외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할 것입니다.”

-왜 세종대왕 동상 위에 올라갈 생각을 했나요?

“세종대왕은 ‘백성의 분노는 정당하다. 분노의 책임은 왕에게 있다’고 했던 왕입니다. 행정부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해결하길 바라요. 며칠 전 담화는 실망이었습니다. 해양경찰청 해체를 유가족이 원하셨을까요? 진상을 알기 원하고 재발되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가족, 교회, 학교의 반응은 어땠어요.

“어머니가 처음엔 많이 걱정하셨는데 지금은 격려해주시고, 아버지는 잘했다고 하셨어요. 교회에서는 집사님들이 고생했다고 간장게장 등 반찬을 싸주셨어요(미소). 교회사를 가르치는 하희정 교수님은 매주 내야 하는 페이퍼를 면제해주고, 다른 학우들에게는 우리가 낸 성명을 읽고 소감문을 쓰라고 하셨어요. 물론 같이 올라간 친구 중에는 고향에 끌려간 애도 있고 용돈 끊긴 애도 있어요.”

하나님은 ‘나중 온 사람’에게도 같이 주신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현실에 참여하고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의식이 아주 강한 것 같습니다.

“1학년 신학과 강의 중 ‘포도원의 품꾼들’(마 20:1∼19)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일찍 오나 늦게 오나 일꾼 모두에게 포도원 주인이 한 데나리온씩 삯을 줍니다. 흔히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예화로 쓰이죠.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富)는 불균등하죠. 출발선이 다릅니다. 일정 수준의 삶을 모두 누릴 수 있도록 부를 분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한 데나리온씩 나눠주는, 복지제도 같은 게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런 제 관심을 아는 한 선배가 도빈을 소개해줬어요. 여기서 공부를 하고 집회에도 자주 참여했어요.”

-세월호 참사와 체제는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그 큰 배를 책임지는 선장이 월 270만원 받는 1년 계약직이었습니다. 그 선장이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성실하게 일할 수 있었을까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어떤 자리에나 비정규직을 앉히는 것은 효율을 최우선으로 삼는 신자유주의의 산물입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상당수 규제 철폐도 이와 연관된 것이 많아요.”

-국가가 자본가를 대변하는 기구가 되고 있다는 성명 문구가 떠오르네요.

“(웃음) 도빈에서는 매주 한 차례 책을 읽고 토론해요. ‘빈곤을 보는 눈’ ‘신자유주의와 종교’ 같은 사회과학 서적도 보고 이현주 목사님의 ‘나의 어머니 나의 신앙이여’ 같은 신앙 서적도 많이 읽어요. 어릴 때는 문학을 좋아했어요. 아버지가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같은 좋은 책을 많이 권해주셨어요. 저는 소설도 20여편쯤 썼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해지네요.

“목회자세요. 경기도, 강원도 시골에서 계속 목회를 해오셨어요.”

-아버지를 따라 신학과에 진학한 건가요.

“그런 셈이죠. 어릴 땐 목사 되라는 말이 싫었는데, 아버지처럼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회는 사람을 바꾸고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거잖아요. 하나님 나라 만드는 데 목회자만큼 좋은 직업도 없겠다 싶더라고요. 인생을 즐길 줄 알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아버지 모습이 좋아요.”

-목회자가 되겠군요.

“그러려고 (감신대에) 입학했는데 그건 모르죠. 비정부 기구(NGO)에서 일할 수도 있고 작가가 될 수도 있고. 하지만 그 일이 무엇이든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는 건 변함이 없을 것 같아요.”

헤어질 무렵 이씨는 운동화 끈을 묶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혔다. 하나님은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이 아들을 어떻게 보실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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