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소설‘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 봉평 태기산 자락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조화순(71) 목사는 1970,80년대 알아주는 노동운동가였다. 76년 알몸 시위와 똥물 투척으로 유명한 인천동일방직 노조사건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이끈 주역이었다.
그런 그가 안산에서 목회를 하다 96년 홀연히 모든 것을 버리고 태기산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 후 강산이 바뀔 만큼 세월이 흘렀다.“땅에서 많은 것을 배워요. 나무가 내 스승이지요.”
감자 배추 무 등 밭농사를 지으면서 한가롭게 살고 있는 조 목사는 “자연이 나를 변화시키는 힘에 놀랐다”고 말했다. 감리교 신학대를 졸업하고 당시로는 드문 여성 목사로 인천 덕적도에서 목회를 시작한 그는 60년대 중반부터 노동현장에서 18년 동안 산업선교를 했고, 13년 동안 경기 안산의 달월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지내며 누구보다 바쁘게 산 사람이었다.
그가 62세의 나이에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고, 사회적 대접도 남다른’ 목사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은퇴했을 때 주위에서는 “한 달도 못 돼 뛰쳐나올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놓아버린 그는‘빨갱이 목사’ ‘악발이 목사’로 불릴 만큼 치열했던 자신의 심성이 1년도 안돼 순화되는 것을 느꼈다. “자연을 보면서 마음이 커나갔어요.‘아,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하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 놀랐지요.”
조 목사는 세상보다 자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나무는 바람이 불거나 눈이 오거나 시비를 걸지 않아요. 자기 있는 모습 그대로 서 있지요. 왜 그런지 아세요. 뿌리가 깊기 때문이지요.” 어느 해 나무를 심다가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보고 자신의 팔이 부러지는 아픔을 느낄 정도로 자연에 동화가 됐다고 한다.
그가 노동운동에 매진하던 시절, 고 함석헌 선생의 부름을 받은 적이 있다. 집으로 찾아 가니 함 선생이 마당 한구석의 작은 온실에서 조그만 화분 하나를 집어주며 “조 목사, 이거 죽이지 말고 잘 키워”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각박했고, 화분은 사무실 구석에서 잊혀졌다. 그 화분이 다시 생각나고, 선생의 뜻을 짐작하게 된 것은 태기산에 들어오고 나서도 한침이 지난 후였다.
지금도 그 먼 산속 흙집에 사는 그를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노동운동을 할 때 동고동락했던 옛 친구들이다. 지난해 고희를 맞았을 때도 김근태 부부, 노회찬 부부, 이현주 목사 등이 찾아왔다.
요즘 사회활동은‘새날을 여는 청소년쉼터’이사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정도. 조 목사는 산속생활을 통해 “사람에게 쉼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됐다”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쉬라고 얘기한다. “나도 전에는‘어떻게 쉴 수 있냐’고 생각했지만, 여기와 보니 그것은 핑계에 불과해요.”
출세,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낮게, 조그맣게,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도 운동의 하나인 것 같다고도 했다. 조 목사는 세상이 도시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최근에는 자신의 생활을 담은‘낮추고 사는 즐거움’(도솔 발행)이린 책을 냈다.
흙의 온기, 들풀의 노래, 나무 한그루가 건네는 말을 소박하고 진솔하게 담은 자연일기이자, 그가 가슴으로 들려주는 생명의 이야기들이다.“어떻게 하면 욕심 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아직도 비울 게 많아요.”
/남경욱기자 kwnam@ hk.co.kr